노모히데오 은퇴인터뷰

Posted by 조홍  2인자 확률분포 : 2011. 12. 4. 09:04
블로그를 흥하게 하기 위해 야구글은 여기다가 싸야겠다

그래서 첫번째 야구글은 개인적으로 아시아 역대 최고의 투수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있는 노모히데오의 은퇴 인터뷰를..

번역은 내가 한거라능 하악하악



노모 히데오가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길을 개척한 노모는 작년 7월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자신을 관철한 삶의 방식에 매력을 느낀 사람은 많겠지만, 모든 것을 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제부터 무엇을 하려고 할까. 매달 한번 여러가지 주제로 인터뷰를 할 것인데, 제 1화는 바로 은퇴와 메이저리그, 현재와 미래에 관해서다. 그는 은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슬픈 표정을 지었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가능한 많은 말을 전하고 싶다. (경칭 생략, 인터뷰어: 미나미자와 테츠야)



은퇴

-은퇴 기자회견은 왜 하지 않았는가

할 필요가 없었다고나 할까. 내가 전하고싶은 것을 미디어에  흘려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자회견을 열어서) 시시한 질문이나 받고 있어도 곤란할 뿐이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방향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는것도 곤란하고. 이제까지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만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은퇴를 결정한 건 언제인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

여 러가지 생각했을때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신세지고있었고, 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퍼포먼스(성적)가 이젠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걸 느꼈다. 실제로 구단에서 방출되고 에이전트에게 물어봤을때 다른 곳에서 영입 의사가 없다는 소리도 들어서, 이대로 진짜 일생 야구선수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라고도 생각했지만 뭐, 그런 이유여도 되는거 아닌가 해서 은퇴를 발표하기로 했다.

-고민하거나 하지는 않았는가

로얄스에서 방출되었을 때도 그렇고 그 전해에는 아예 실전등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던질 수 없을때에 똑같이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팀도 없었던 상황에서 어떻게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오긴 했다

뭐 어찌어찌 메이저에 올라올 수 있어서 좋긴 했다.

-다시한번 윈터리그에 가서 거기서 메이저리그를 노려볼 생각은 없는가

솔직히 가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음.. 무리겠지(라고 결단을 내렸다). 음.

-은퇴 발표때의 발언 중 "나의 경우엔 후회가 남는다" 는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 좀더 설명해달라

뭐, 확실히 말해보자면, 마운드에 올라가고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 마운드에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외로워지고 음.. 후회가 남는다.. 는 의미일까.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떨쳐버리듯이) 뭐 원랜 이런거 말하면 안되지만.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안되는데, 뭐 던지고 싶은건 던지고 싶은 거다(웃음).

-그런 기분은 예를 들면 앞으로 5년을 더 하고 나서 그만두더라도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그때라도 후회는 남아있을 것이다.

-야구가 좋아서 그런것인가

그렇다.

-로얄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도중에 위기상황에 등판하기도 했는데, 선발에 집착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런걸 고집할 입장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선발이 하고 싶었다. '뭐가 다른 건가' 하는 생각은 있었다.

-마지막 등판은 예상외의 구원등판에서 난타당했다.(주1)

예상외의 등판이었는데, 예상외의 컨트롤 미스였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한번 더 토네이도가 보고 싶었다.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였다. 그러나 이젠 그만둘 만 했다.

-95년에 바다를 건너가 선풍을 일으켰다. 그당시 자신은 어땠는가

정말 매일매일이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을 때를 잊지 못한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간 감상은 어떤가

이 제까지와는 좀 다른 감상인데, 사회인야구를 할 때와도 다르고, 프로에 갈 때도 -그해(90년)에 프로를 목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가가 아주 좋아서 내가 여기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프로에 들어갔다. 메이저리그는 정말로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곳이다. 거기서 결과가 나왔다는 데 대한 만족감이 내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언제부터 메이저리그를 목표했었나

아 마추어때에 세계대회(89년 푸에르토리코 인터콘티넨탈 대회)에 나가, 거기서 그럭저럭 던졌다. 미국인 심판이 "자네 반드시 메이저에서 던질 수 있네"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긴테쓰에 입단하고 난 뒤 선수들 사이에서 메이저리그 시청이 유행이어서 "메이저리그 좋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 미일 올스타전에서 실제로 대결해보고 "여기서 내 스타일로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95년 2월 13일 다저스 입단을 발표하는 노모 히데오.

-개척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느낌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했을 뿐이다. 그 뒤 온 선수들이 잘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저스에서의 3년 반 뒤, 몇몇 팀을 전전했다. 그때는 어땠는가

나 에게 있어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구단을 볼 수 있었고, 밀워키 같은 시골에서도 실제로 살아보면 꽤 살기 좋은 동네고, 디트로이트도 그랬다. 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겪어볼 수 있으니까. 선수들과 사이도 좋아지고, 다음에 다저스에 돌아갔을때엔 상대하는 팀마다 예전 팀메이트가 하나씩 있어서 경기하는것이 즐거웠다. 내 자산이다.

-맞았을때나, 막아냈을 때 어느쪽이 더 기억에 남는가

막아내서 이긴 쪽이 기억에 남는다.
 



95년 6월 2일 메이저리그 첫승을 따내고 라소다감독(왼쪽)과 악수하는 노모 히데오

-무언가 기억에 남는 것은?

처 음에는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가 즐거웠다. 휴스턴도 그랬고.. 3, 4번 중심타자들이 올스타 선수였고. (주2) 특히 샌프란시스코전에서는 운 좋게도 점수를 내주지 않아서 야유를 많이 들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이겼던 게 생각이 난다.

주1: 08년 4월 18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원정경기에서 8회 야부타가 만든 2사 만루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연속안타를 맞은 뒤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얻어맞았다. 이틀 뒤인 4월 20일 캔사스시티는 노모를 방출했다.

주2: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3번은 배리 본즈, 4번은 맷 윌리엄스. 다저스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애스트로스의 주축타자인 후에 통산 3천안타를 달성하게 되는 크랙 비지오, 당시 타격 3관왕에 가장 가까이 갔던 기마자세 타법의 제프 백웰, 강타자 데릭 벨 셋은 그들의 이름 앞글자를 따 킬러비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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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일본에서 노모가 붐을 일으키던 시절 마음 속으로 냉정하게 바라볼수 있었나


알고는 있었다. 다만, 처음에 다저스에 왔을때 좀처럼 일본인 공동체에 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야구에도 집중하고 싶었다. 커뮤니티의 사람들로서는 어떤 이벤트에라도 참가해줬으면 했을 것이다. 일본인이 미국에서는 소수인종이다보니 공동체를 위해 뭔가 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나로서는 야구하는 것만으로도 전부였다. 모두 미국 사회속에서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데 힘을 보태 달라, 고 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당시 나는 그럴 수 없어서 굳이 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일본과 가장 달랐던 것은 무엇인가


일단 가장 놀란건, 높은 공은 반드시 홈런을 맞는 거였다. 실제로 만만한 공을 던지면 장타를 맞는건 당연하지만, 그게 담장을 넘어간다. 일본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었다면 고작 2루타 정도였을 것이다. 내 경우, 일본에서 일부러 높은 공을 던져서 막으려고 했던 것도 있었고, (홈런을 맞는 건)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메이저 레벨에서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레벨이 높다고 생각한다. 던지고 있는 공도 투수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공을 던지고 있는데도, 타자들도 거기에 대응하고, (투수도 타자도) 양쪽 다 수준이 올라가고있다고 생각한다.


-투수 중에 감탄했던 사람은 있는가


매덕스다. 그리고 세이버하겐(주1) 정도일까. 실제 타석에 서보니 (어떻게) 저런 멋진 공을 던지고 있는건지 하고 생각했다. 깜짝 놀랐다.


-메이저 14년간은 어떤 시간이었는가?


마지막 4년 정도는 거의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10년 정도밖에 제대로 못했다. 역시 좀 짧긴 하다.


-재활중에는 괴롭지 않았는지


그 랬다. 스트레스가 쌓였던 시기였다. (팔꿈치가) 좋아져도 아파지고 불펜에도 갈 수 없고, 마운드에서 던지는건 당연히 안되고. 그때는 괴로웠달까, 스트레스가 쌓였다. 던지지 않으면 모른다. (원인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다(웃음).


-야구 인생에서 공이 가장 빨랐던 시기는 언제인가


언제였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 투수로서의 전성기는 언제인가.


음, 두번째로 다저스에 왔을때가 아닌가 한다(주2). 그때까지는, 특히 젊었을 때는, 내가 결과를 내주는게 팀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두번째로 다저스에 왔을 때는, 그전까지 밀워키에도 있었고, 디트로이트에 가기도 했고, 보스턴에도 갔었기에, 팀에서 경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팀의 한 명으로서 내가 있고, 그리고 거기서 결과를 내는 야구를 하는 쪽이 성취감이랄까 만족감이 완전히 다르다. 그걸 깨달았다. 젊었을 때에 타이틀을 땄을 때엔 미디어에서 보면 확실히 활약도 있겠고, 던지는 공도 좋아 보일거다. 하지만 자기가 선수로서 야구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더한다면 전성기는 그때라고 본다. (그때가) 투수로서보다는  야구선수로서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던지는 시합에서 이긴다는것은 변하지 않지만, 팀 속에 들어가 주위의 선수들의 일도 알고, 시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고, 내가 팀 안에서 없으면 안되는 선수라는 것도 알고, 할 일은 많아지지만, 그렇게 결과를 낸다고 하는 것,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 것의 만족감은 전혀 다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회인, 일본프로, 메이저리그 여기저기서 야구했는데.


내 가 지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면, (세상의 상황으로 본다면) 갈 곳이 없어서, 고등학교에서 야구인생을 끝내지 않으면 안됐었다. 고교야구만으로 끝났을 선수가, 여기까지 와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 가능한가. 정말로 운이 좋았다.


-노모 히데오가 고등학교에서 끝났었는가.


좀더 실패해도 되는 곳이나, 기회를 살리는 곳, 내 능력을 늘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한다면 나 같은 선수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성공을 계속해나가는 선수만 존재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주1: 90년대 최고의 투수인 그렉 매덕스. 정교한 컨트롤로 유명했다. 08년 오프시즌에 은퇴를 선언했다. 브렛 세이버하겐은 사이영상 2회,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한 적 있는 투수. 어깨 부상 이후에 부활하였다. 2001년 은퇴.


주2: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002, 2003년은 연속 16승. 2002년은 34경기에 등판하여 16승 6패. 승률 7할 2푼 7리는 일본 시절을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