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고등학생

Posted by 아이시카 from Studio Fl+ : 2009. 11. 24. 14:29
다 씻고나왔을 때 집 안엔 훈훈한 공기가 돌고 있었다. 뭔가 썰렁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문 옆에 있던 조금은 나이들어 보이는 옷가지를 줏어 입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있는건 벽에 걸린 대형 액정TV와 장식장 두개 그리고 소파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있을건 다 있는 듯 한데 뭐가 이리 허전한거지?
그녀가 보이지 않았기에 거실을 두리번거리다 장식장에 눈길이 갔다. 책과 뭔지 모를 상장 모형 배 등이 있는데 그중에 졸업앨범에 눈이갔다. 2006, 2005, 2004, 2002년의 네권. 전부 우리 학교의 졸업앨범이다. 가족이 좀 많은것 같은데, 집은 왜 이렇게 썰렁할까?
2002년도부터 만지작 거리다가 우리 누나가 졸업한 2006년도 앨범을 꺼내들었다. 몇반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여기 저기 훑어보다가 3학년 2반이었다는걸 기억해 내고 2반을 찾아봤다.
2반.... 신민아. 찾았다. 여전한 얼굴로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증명사진이 실려 있었다. 거참... 증명사진은 웃으면서 찍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다른 사진은 없을까 싶어서 단체사진을 뒤져보다가 단체사진에서 누군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근데 이 누군가가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
"뭐 하고 있어?"
"응? 졸업 앨범이 있길래 보고 있어."
그녀도 씻고 나왔는지 머리를 닦고 있었다.
"언제거? 옷은 잘 맞아?"
"2006년. 대충 맞아."
"다행이네."
그녀는 옆으로 다가와서 내가 보고있는 사진을 같이 들여다봤다.
"누나 찾고 있는거야?"
풍겨오는 샴푸 향을 맡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누나를 알고있어?"
그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통화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유정이 친구 은아인데요. 지금 하정이가 저희집에 와 있어서요. 네. 네. 아버지 옷 빌려줬어요. 교복은 빨고 있고요. 네. 그럴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잘 보살피다 돌려 보낼게요. 네."
그녀, 은아는 전화기를 건넸다. 그러고보니 임은아였구나 이름이. 난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가만히 들고만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냉큼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엄마?"
'넌 어떻게 알고 누나 친구집엘 간거니?'
"아니, 알고 간게 아니라..."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입에 댄 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안게 아니라 누나 친구가 먼저 날 알아보고 집어왔어요."
'하여간, 비 맞고 다니는 꼴이 얼마나 불쌍해 보였으면 그랬겠니. 알았다. 나쁜짓 하지 말고, 폐 끼치지 말고 내일 들어와야한다?'
"네. 알았어요."
'나올때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네, 네."
'늦었으니 얼른 자.'
"알았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전화를 끊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옆구리에 끼고있던 앨범을 다시 꽂아넣고 근처 소파에 몸을 던졌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2006년 6월 24일 토요일 새벽